리버스 시어링이란?
스테이크는 고온의 팬이나 그릴에서 겉면을 익힌 후(searing) 저온의 오븐에서 일정 시간 두어 내부까지 익히는 방식을 많이 써왔다. 전문 셰프나 스테이크 요리에 익숙한 사람들은 오븐 없이 불 조절만으로 이것을 해내기도 한다. 리버스 시어(reverse sear, 한국에선 보통 시어링이라 많이 한다)는 이 과정을 반대로(reverse) 저온에서 고기를 내부까지 익힌 다음, 높은 열로 고기 겉면을 시어링 하는 방식이다.
시어링을 먼저 하고 고기 내부를 익히는 방식은 홈 쿠킹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어느 정도 기술을 만들 수 있다. 우리 지갑과 시간은 유한한데, 요리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과정은 견디기 힘들고 그냥 사 먹고 말지라며 포기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리버스 시어링은 장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점을 빼면 성공 확률이 높고 따라 하기 쉽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요리 과정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수비드 스테이크 요리 방법
고기 준비
고기를 1인분 혹은 한 번에 먹을 단위로 자르고 동글동글하게 완성될 수 있게 조금 다듬어 준다. 자투리 고기들은 모아두었다가 미역국을 끓여 먹으면 된다.
수비드는 고기 두께 제약이 심하지 않아서 팬 프라잉 할 때보다 더 두꺼운 고기를 써도 된다. 오히려 두꺼울수록 더 먹음직스럽게 보이게 한다. 소고기는 한우가 제일 좋지만 너무너무 비싸기 때문에 미국산 프라임 등급의 소고기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한다. 일단 재료가 바닥을 깔아줘야 뭘 만들어도 맛있는 법이다.
진공 포장
수비드를 위해서 진공 포장을 해야 한다. 진공 포장하는 이유는 수비드 머신이 따뜻한 온수를 자동으로 순환시키면서 고기를 익히기 때문에 물의 온도를 고르게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진공포장기, 진공팩은 가정에서 요리 외에 활용하려면 할 수 있는 곳이 있긴 한데 귀찮은 일이라, 진공포장기를 구매하지 않고 비닐랩을 치밀하게 잘 감싸서 수비드 하시는 분들도 많으니 참고하자.
어쨌든 진공팩에 고기를 넣을 때 위 사진처럼 고기 주위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통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렇게 한 후 고기를 진공 포장하자.
나는 주로 진공 포장할 때 다른 재료를 넣지 않는 편인데 허브 채소, 소금, 후추를 미리 넣어두는 분들도 많다. 후추는 시어링 과정에서 탈 수 있기 때문에 허브 채소와 소금 정도는 어느 정도 밑간으로 하는 것도 좋다. 허브 채소는 로즈마리, 타임 등 본인의 취향에 맞는 향을 가진 채소를 고르면 된다.
수비드 머신에 넣고 조리
수비드 머신의 온도를 원하는 굽기 정도(레어 - 미디엄 - 웰던)에 맞추고 고기를 넣은 다음 1시간 이상 둔다. 고기가 두껍거나 지방이 많으면 느긋하게 2시간 정도 넣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오래 수비드 할수록 고기의 젤라틴이 녹아서 더 육질이 부드러운 고기가 된다.
지방층은 열을 받는데 시간이 살코기보다 오래 걸려서 짧게 수비드 하게 되면 지방이 녹지 못하거나, 지방 주위 살이 덜 익은 상태가 될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 등심 스테이크를 미디엄 레어로 주문하면 지방을 녹이지 못하고, 지방 주위 살은 거의 블루 상태(생고기)인 망한 스테이크를 주는 곳도 있는데, 정말 짜증이 난다.
고기 겉의 수분 제거
수비드가 완료된 고기는 고기 표면의 육즙이 빠져나와서 수분을 한 껏 머금고 있다. 시어링을 해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마이야르 반응을 고기 겉면에 충분히 만들어주기 위해서인데, 물은 마이야르 반응을 방해한다. 팬의 열이 물이 끓어서 증발하는데 대부분 사용되기 때문에 고기 겉면에 충분히 온도를 빠른 시간 내에 올려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키친 타월이나 해동지를 써서 고기 겉면의 수분을 모두 흡수시켜주자. 이렇게 한다고 해서 고기 속살의 육즙이 다 빠져나가거나 그러지 않는다.
수분을 흡수시킨 고기에 소금 간을 해주고 팬 위에서 시어링을 한다.
팬을 뜨겁게 가열시키고 올리브유를 뿌린 다음 어느 정도 기다렸다가 고기를 굽는다. 수분을 이미 제거했기 때문에 마이야르 반응이 아주 빠르게 잘 일어나서 자칫 겉을 태울 수 있기 때문에 집게로 고기를 들어보고 타지 않았는지 체크해보자. 고기 겉면이 익으면서 쪼그라들기 때문에 팬에 닿은 부위가 공중으로 약간 뜰 수 있다. 그러므로 집게로 고기를 꾹꾹 눌러준다. 육즙 나간다고 고기를 누르지 말라고들 하는데, 실력이 미천한 셰프들이 방송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고기를 누른다고 내부의 육즙이 빠지는 것이 아니다.
고기의 모든 면에 마이야르를 만들면 시어링이 끝이 난다.
레스팅과 시즈닝, 플레이팅
시어링이 된 고기에 후추를 뿌리고(시즈닝) 키친타월로 감싸서 5~10분 레스팅 해준다. 단백질은 익을 때 수분을 토했다가 식으면서 다시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데, 이 성질을 활용해서 고기 육즙이 다시 단백질 세포 속으로 흡수되도록 하는 것이 레스팅이다. 보다 상세한 이론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여 보자.
2019/12/20 - [음식 문화와 지식들] - 고기와 스테이크에 관련된 모든 지식들 (온도, 변성, 식감 등)
레스팅이 완료된 고기는 플레이팅 해서 먹으면 된다. 아니면 위 사진처럼 미리 식도로 잘라도 된다. 다만 이렇게 미리 자르게 되면 고기가 빠르게 식기 때문에 그 점은 조심하면 좋을 것 같다.
수비드는 여행 갈 때 유용하다!
가정용 수비드 머신은 크기가 크지 않아서 여행 용품과 함께 가져가기 좋다.
- 집에서 미리 고기를 수비드 한다.
- 진공팩에 든 상태 그대로 냉장고에서 보관한다. (너무 오래 두면 안 되겠지)
- 여행지에 진공팩과 수비드 머신을 가져간다. (고기 온도는 냉장 상태와 유사하게 유지되도록 주의)
- 여행지에서 수비스 머신을 세팅하고 30분 정도 진공팩을 넣어 데운다.
- 요리를 시작해서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기름진 음식은 고추냉이와 잘 맞다. 2020년 코로나가 한창인 이런 때에 마트 가기도 두려운데, 미리 집에서 수비드 한 고기, 기름장(참기름, 소금, 후추), 고추냉이, 쌈장, 페스토, 반찬, 햇반 등을 챙겨가면 장을 보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다.
수비드 장비 소개와 대안들
수비드에 필요한 장비들을 사놓고, 1년에 몇 번이나 쓸까. 그런 이유 때문에 수비드 장비들을 구비하지 않고 대안을 찾아 가성비 좋게 요리하시는 분들도 많다. 여기에서는 수비드 장비에 대해 지금까지 듣고 알게 된 것들을 가볍게 적어보려고 한다.
수비드 머신
용기(또는 수비드 전용 수조)에 진공팩, 물을 넣은 다음 수비드 머신을 설치한 사진이다. 수비드 머신은 물을 순환시키면서 물을 특정 온도까지 가열/유지해준다. 스테이크는 고기 내부의 온도가 원하는 굽기 정도에 맞추어 얼마나 잘 골고루 잘 도달했느냐가 완성도와 직결되는 부분인데, 수비드 머신의 온도 유지 특징이 고기가 오버쿡/언더쿡 되는 것을 방지해준다. 거의 "Show me the money" 치트키나 다름없다.
수비드 머신은 5~6년 전에는 레스토랑 전용 요리 장비여서 가정용을 구하기 힘들었지만 여러 회사들이 만들기 시작해 조금씩 제품들과 제조사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2020.12 현재) 보통 새로운 제품을 살 때 그 제품이 괜찮은지 레퍼런스를 찾기 마련인데, 많은 사람들이 Anova 제품 추천을 많이 한다. Anova 는 원래 배대지를 써서 미국에서 배송받아야 했는데 한국에서 주문량이 많아 1~2년 전부터 한글 공홈, 한국 직배송을 해주고 있다. 다른 제품을 써보지 않아 비교 평가를 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폰 연동, 블루투스 같은 쓸데없는 기능을 빼면 100~150$ 사이에 공홈에서 구매 가능하다. 프로모션도 꽤 자주 하는데, 운 좋게 100$ 아래에 샀다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저는 Anova 제조사와 아무런 계약 관계가 없고, 다만 쓰는 제품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최대 온도 값이 정해져 있고 평균 온도가 유지되는 특징이 있는 것은 수비드 머신을 대체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시도하는 것이 전기밥솥이다. 전기밥솥은 가열/휴식을 되풀이하기 때문에 평균적인 온도가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평균 온도가 60도 초반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미디엄을 만들기 힘든 점, 첫 가열 시간이 길고, 휴식 텀도 길어서 수비드 되려면 24시간 정도 걸리는 점 이런 단점이 있다. 요즘은 국내에 10만 원 아래의 저가 수비드 머신들도 꽤 많이 나오고 있어서 밥솥으로 더 이상 하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진공포장기
진공포장기는 최대 5만 원 이하의 가격으로 구할 수 있어서 수비드 머신보다는 가격 장벽이 높진 않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활용을 자주 안 할 것 같아, 절약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진공포장기는 비닐팩-고기 사이가 완전히 밀착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비닐과 고기 사이에 공기층이 있으면 온도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아 수비드 환경을 온전히 구현하기 어렵다. 우리가 겨울에 단열을 위해서 방한 뽁뽁이를 창문에 붙이곤 하는데, 그것과 같은 원리로 공기층이 있으면 단열되어 버린다. 1회용 봉투에 고기를 넣고 빨대를 이용해서 공기를 빨아내어 진공 환경을 만들기도 하고, 비닐랩을 치밀하게 감싸기도 한다. 식재료나 공기가 닿으면 안 되는 수집품(동전 같은) 등을 보관시킬 때 응용할 수 있어서 구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수조
개인적으로 수조가 가장 절약하기 좋은 포인트 같다. 수비드 머신, 진공포장기는 장점과 대안들의 단점이 워낙 대비되고 요리의 완성도와도 관련이 많이 되어 있지만, 수비드 수조는 특별히 구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수조 역할을 할 수 있는 깊은 냄비를 사용하면 되고, 수분이 날아가지 않게 호일이나 랩으로 위를 막으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주로 비열이 높은 밥솥의 밥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두꺼워서 순환하는 물이 온도를 쉽게 잃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수비드 이외의 리버스 시어링 방법들
수비드 외 다른 리버스 시어링 방법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오븐을 활용
- 에어 프라이어를 활용
- 전자레인지 활용
오븐이나 에어 프라이어는 정온 기능이 있지만 기본 100도 이상으로 온도가 높아서 고기 내부가 오버쿡 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요리 후기에서 고기의 두께와 오븐 설정 온도, 고기를 가열하는 시간을 잘 참고하면 좋겠다. 전자레인지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 방법들을 쓸 때 고기를 호일 등으로 감싸지 않고 오픈시키는 부분도 수분 증발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해서 해보는 것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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