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섭취하는 고기는 대부분 동물들의 근육 부분인데, 근육의 구성 요소 별로 온도에 따라 변성이 일어나는 조건과 변성 후 질감 차이를 이해하면 스테이크를 왜 OO 온도로 구우라고 하는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근육의 구조
동물들의 근육은 가늘고 긴 근섬유(muscle fiber)들이 모인 다발이다. 한 가닥의 근섬유는 다시 근원섬유(myofibril)들이 모인 다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근원섬유는 미오신과 액틴 다발이 서로 복잡하게 꼬여있는 모양을 갖고 있다.
그림에서 윗부분은 근섬유 가닥 하나를 나타낸 것인데 천하장사 소시지 여러 개를 묶어놓은 것처럼 근원섬유들의 다발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래는 근원섬유의 구조인데 초록색 부분인 액틴 필라멘트(thin filament)와 붉은색 부분인 미오신 필라멘트(thick filament)들이 내부까지 복잡하게 꼬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표면에만 액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고기 구성 요소들의 변성 온도와 요리
고기를 가열하면 열은 고기 표면에서 내부로 깊숙이 전도되어 들어가면서 고기 내부의 온도를 점차 올린다. 온도가 올라갈수록 고기의 여러 구성요소들은 복잡한 화학변화를 일으키면서 변성이 되어 간다. 우리는 이 과정을 고기가 익어간다고 표현한다.
구성요소 중에서도 액틴과 미오신 단백질은 근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요리의 텍스처(식감)를 결정하는데 큰 영향을 준다.
미오신
- 변성 온도 : 40-50
- 변성 완료 후 고기는 조리된 느낌을 주지만 여전히 부드럽다고 느낄 수 있음
액틴
- 변성 온도 : 66-73
- 액틴 변성이 시작되면 수분이 급속히 이탈하기 시작함 (49도일 때보다 2배 빠른 속도)
- 액틴 변성이 시작된 고기는 질기게 느껴짐
변성 온도들은 자료마다 적게는 섭씨 1, 2도에서 많게는 3, 4도까지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미오신 변성온도가 섭씨 40-50도 구간이라는 자료가 있으면 다른 자료는 40-52, 또 다른 자료는 42-52 등 전문적인 자료라 하여도 구간이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았다. 이 점은 참고하자.
미오신은 변성되면서 갖고 있던 물 분자들을 외부로 토해낸다. 액틴은 변성되면 질기고 단단한 식감이 들도록 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드러운 육질과 풍부한 육즙을 가진 고기 요리를 만들려면 미오신은 변성을 모두 시키되 액틴은 변성이 일어나지 않도록 온도 관리를 해주면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스테이크 등 추가 수분 없이 요리하는 경우 50도 ~ 66도 사이를 목표 온도로 하면 된다.
다른 구성 요소들의 변성
맛에 많은 영향을 많이 주는 다른 구성 요소들의 변성 조건 온도는 다음과 같다.
지방
- 변성 온도 : 54.4-60
- 지방은 변성되기 전에 딱딱한 식감을 주며, 다른 맛을 갖고 있지 않음
- 변성 후 고소한 풍미를 줌
- 근섬유 다발 사이에 생길 수 있음
콜라겐
- 변성 온도 : 60-70
- 근섬유 각 구성요소들을 묶어주는 막의 주요 물질
- 60도에서 부터 내부 구성요소들이 터져 나오며 수축하여 급속히 질겨지게 함
- 70도에서는 젤라틴으로 변성되면서 질겨진 식감이 다시 부드럽게 변함
- 젤라틴 상태부터 물에 녹을 수 있으며 육수의 감칠맛과 끈적한 식감을 형성
미오글로빈
- 고기가 붉게 보이는 이유
- 변성 온도 : 66도
- 변성이 시작되면 회백색으로 색깔이 변한다.
스테이크의 내부 온도
변성 조건들과 스테이크의 굽기를 온도 구간 별로 한 번에 표시하면 위 그림처럼 된다.
스테이크는 겉은 뜨겁고 속은 따뜻하게
스테이크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갖고 요리를 하면 된다.
- 겉 표면은 140~160도까지 가열하여 마이야르 반응의 풍미가 충분히 느껴질 수 있게 함
- 열은 표면에서 고기 내부로 침투하면서 서서히 내부의 온도를 올림. 오래 시간 팬에 놔두면 콜라겐 수축, 액틴 변성이 내부까지 두껍게 발생하여 고기를 질겨지게 함. 가열 시간을 최대한 짧게 해야 함
- 가열을 오래할수록 고기의 수분이 점차 줄어들기 때문에 최대한 짧게 조리해야 함
- 모든 단백질 변성은 수분이 바깥으로 탈출하게 하므로 육즙 가득한 스테이크를 만들려면 단백질 변성이 적게 일어날수록 좋음
- 지방이 분해될 수 있는 온도까지 가열
스테이크는 지방 함유량에 따라서 내부 온도를 조절한다.
필렛 미뇽이라고도 부르는 안심은 지방이 적은 부분이다. 안심은 분해할 지방이 적으므로 수분 유출을 줄여 부드럽고 육즙이 많은 식감을 주기 위해서 레어 온도에 해당하는 49-54도까지 내부가 가열되면 된다. 풀을 먹고 자란 소는 근육 내 지방이 거의 없고 표면에 몰려 있는데 풀을 먹고 자란 소의 기름기 많은 부위인 등심 같은 부분도 온도를 레어~미디엄레어 사이로 맞추면 된다.
반면 기본적으로 기름기 많은 부위인 등심, 윗등심, 살치살 등의 부위는 지방이 녹을 수 있는 미디엄 레어 온도까지 가열해야 지방의 풍미를 스테이크에 녹여낼 수 있다.
지방은 스테이크에 쓸 수 있는 고기의 두께에도 영향을 주며, 지방이 많은 고기는 내부의 지방을 단시간에 녹여낼 수 있도록 상대적으로 얇게 만든다. 반면 지방이 적은 부위는 열을 단시간에 전달할 필요가 없어서 수분을 보존시키기 위해서 두껍게 요리한다.
육수, 수육은 80도로 젤라틴화
콜라겐은 근섬유, 근원섬유 다발들을 감싸는 얇은 막을 이루는 물질인데 변성 온도 구간에 다다르면 내부의 수분을 바깥으로 발산하면서 수축하여 급속히 고기가 질겨지게 한다. 잘못 삶아진 수육이 너무 질겨서 먹기 힘든 이유가 콜라겐이 수축된 상태에서 요리를 끝내버려서 그런 것이다.
위 자료는 한우의 연도(Tenderness, 질김/연함)에 관한 연구 자료에서 가져온 것으로 콜라겐 수축이 일어났을 때 고기를 질겨지게 만드는 전단력이 급속히 증가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미 액틴 변성 전에 콜라겐 수축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스테이크는 미디엄-미디엄부터 고기가 많이 질겨진다.
콜라겐 수축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70도 이상의 열과 수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여 젤라틴으로 분해되도록 해야 한다. 만약 고기가 지방이 적은 부위라면 외부의 수분이 내부에 전해지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려서 2시간 가깝게 삶아야 할 수도 있다. 지방이 많은 부위는 지방이 녹아나면서 생긴 공간 때문에 외부와 닿는 면적이 점점 넓어지지만 순수 살코기만 있는 부위는 그렇지 않아 외부 수분 전달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분해된 젤라틴은 물에 녹을 수 있어서 외부 용액(육수물)에 용출되고, 이때 젤라틴 구성요소인 글루타민산이 바깥으로 나와 육수에 녹는다. 이 성분은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글루타메이트와 같은 것으로 잘 만든 육수일수록 젤라틴이 풍부하게 용출된 것이다. 시간이 비례하므로 역시 육수를 삶을 때에도 오랜 시간 삶아야 한다.
육수를 만들 때 70도 보다 80도 일 때 2배 더 빠르게 분해 반응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러나 100도는 물의 기화 반응이 빨라지게 되어 외부에서 계속 물을 공급해야 하며, 공급된 물은 용출된 성분들과 화학 결합을 하는데 추가적인 시간이 걸리게 하므로 기화 속도를 늦출 수 있게 80도 정도의 수온이 적당하다.
요리에 관련된 다른 지식들
여기까지는 고기의 근육 세포에 관한 내용이었으며 아래부터는 아래에 요리에 참고할 수 있는 다른 고기 관련 지식들을 정리했다.
미오글로빈 - 고기의 색이 붉은 이유
생물들의 세포는 산소가 공급되어야 계속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동물들의 체내에서 미오글로빈이라는 물질이 산소를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고기가 붉어 보이는 것은 미오글로빈이 보이는 색이다.
시장이나 마트에서 닭고기와 소고기의 색깔을 비교해보자. 소고기가 훨씬 붉다. 왜 그런가하면 동물의 종류마다 미오글로빈 함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닭이 소고기보다 근육에 미오글로빈을 더 적게 갖고 있다. 같은 동물도 부위마다 색상이 차이가 날 수 있다. 근육은 몸을 지탱하는 데 주로 사용되는 지근과 움직이는데 필요한 속근으로 나뉘는데 지근이 발달한 부위일수록 미오글로빈이 높아서 더 붉게 보인다. 다시 닭을 예를 들면 가슴살과 다리살이 색상 차이가 있는데 가슴살은 평소 가동되는 경우가 적지만 다리는 닭이 계속 서있기 위해서 항상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지근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미오글로빈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고깃집에서 소고기를 시켰는데 소고기의 색깔이 탁하거나 어두운 붉은빛, 보랏빛을 띨 수 있다. 그것은 소고기가 공기와 접촉할 수 없는 상태에 있어서 색상이 변한 것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생고기가 부패하게 되면 갈색으로 변하며, 공기가 차단되었던 고기와는 색상이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런 고기들은 잠깐 그대로 두면 다시 붉게 변한다. 한편 도축 시 동물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불그스름한 보랏빛을 띨 수 있는 점도 알아두자.
도축 시 동물의 피는 99% 제거된다. 마트나 정육점에서 사온 고기의 포장지, 포장용기의 붉은 액체는 미오글로빈이 고기 내/외부의 수분에 녹아 있는 것이며 피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레스팅이 덜 된 고기를 썰면 붉은빛 액체 흥건하게 흐르는데 그것은 미오신과 같은 근섬유가 토해낸 수분에 미오글로빈이 녹아난 것이다. 스테이크의 단면은 미오글로빈의 색이며 피가 아니다. 미오글로빈이 변성되어 회색이 되면 66도 이상이라는 의미이므로 이미 콜라겐 수축과 액틴 변성이 시작된 온도라서 매우 질기다.
뼈가 포함된 고기의 경우 골수 내부의 조혈세포의 피가 말끔히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물에 담그고 제거되도록 하는 것이 좋다. 피는 요리의 풍미를 낮춘다.
레스팅
레스팅은 스테이크에서 아주 중요한 과정이다. 레스팅되는 동안 근섬유가 토해낸 물을 다시 흡수하여 식사할 때 육즙이 풍부한 식감을 주기 때문이다.
고깃집에서 가끔 보이는 요술행주에 물을 부으면 행주가 물을 흡수하면서 커지는데 이와 같은 일이 레스팅하는 동안 근섬유의 미오신에서 일어난다. 가열되는 동안 변성된 미오신 필라멘트는 외부 열 공급이 줄어들면 토해낸 수분을 요술행주처럼 다시 빨아들여 내부에 가둔다. 위에 미오글로빈에서도 적었지만 레스팅을 안 한 스테이크는 나이프로 자르면 흥건하게 수분이 바깥으로 흘러내린다.
맨 오른쪽은 레스팅 후 수분 분포인데, 근원섬유 다발 바깥으로 빠져나온 수분이 레스팅후 다시 재흡수되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가열되는 동안 수축되었던 고기가 레스팅하는 동안 다시 조금 부풀어 올라, 식감을 더 부드럽게 해 준다. 가열되는 동안 근섬유 다발이 급속히 수축했다가 열 공급이 끊어지면 점차 긴장이 풀어지는 것처럼 다시 팽창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 심지어 업력 높은 요리사조차 마이야르 반응이 만든 겉표면의 크러스트가 육즙을 가두는 것처럼 오해하는데 마이야르 반응은 오히려 수분 탈출을 가속시키는 방식인 것으로 밝혀졌고, 육즙 보존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한다.
염지
염분은 근원섬유 단백질이 분해되는 것을 도와준다. 염지 된 고기는 간간하게 간도 맞고 또 더 부드럽게 섭취될 수 있다. 시간과 비례해서 오래 염지 할수록 염분이 깊숙이 침투된다고 오해할 수 있으나 겨우 그 차이는 몇 밀리미터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며 물리적인 침투 한계가 존재한다고 한다.
근원섬유의 표면이 염분에 의해 분해되고 재배열되면서 수분과 결합하는 능력이 커지게 만들기 때문에 육수를 만들 때에도 적당한 염도를 맞추면 조리 과정을 효율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염도가 너무 높아지면 오히려 삼투압 경계를 무너뜨려 고기의 탈수를 가속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1% 정도의 염도를 맞추는 것이 좋다고 한다.
조리 안전 온도
지금까지 온도가 너무 높아지는 것을 경계하는 것처럼 글을 작성했는데, 어떤 동물의 고기인가에 따라 조리 안전 온도 가이드라인이 있다. 소고기, 돼지고기는 유통과정에서 표면에 식중독균, 박테리아 등이 증식할 수 있기 때문에 표면을 잘 익혀야 하며, 닭고기는 살코기 내부에 살모넬라 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고기 전체를 살모넬라가 사멸할 수 있는 74도 이상으로 익히고 섭취해야 한다. 햄버거 패티나 함박 스테이크에 쓰이는 간 고기(minced meat)는 이미 표면이 매우 넓어진 상태이기 때문에 박테리아와 세균이 사멸할 수 있도록 웰던 이상의 온도로 충분히 익혀야 한다. 덜 익은 맥도날드 패티로 사고난 것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스테이크는 표면만 잘 처리했으면 레어도 괜찮지만 표면이 서로 구르고 섞인 간 고기는 반드시 내부까지 완벽히 익히도록 한다. 어류, 패류도 마찬가지의 조리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
본인이 요리에 사용하고자 하는 고기의 종류에 따라 식품의약품 안전처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가이드라인을 확인하고 조리 온도를 설정해서 식중독 등에 걸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작성자는 개인의 부주의에 의한 질병/사고에 책임을 지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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